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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itic

 

조각의 앵포르멜

 

이슬비 (독립기획자, 미학관 디렉터)

 

 

카논(cannon)이라 불리는 고대 그리스 미술의 이상적인 비례는 한동안 작가를 매혹시킨 인체 조각의 기준으로 보인다. 인간의 신체가 가지고 있는 균형, 동세, 유기적인 조직과 단단한 근육의 형태는 그 자체로 ‘아름다움’으로 분류되어 하나의 기준을 정립하기에 우리는 그것을 기준이나 표준이라고 부른다.  

신제헌의 <Movement Study>(2022)나 <Header>(2022), <Pitcher>(2022)는 그동안 우리가 익숙하게 보았던 그리스 조각의 일부분을 재현한 듯한 느낌을 준다. 독일의 미술사가이자 고고학자인 빙켈만(Johann Joachim Winckelmann)이 “고귀한 단순과 고요한 위대”라고 평했던 라오콘 상의 일부를 모사한 듯 보이는 기존의 작업들에서 인체 조각을 대하는 그의 태도와 작업의 모티프를 살펴볼 수 있다. 역동적인 자세, 뒤틀린 움직임으로 드러나는 근육의 섬세함을 직접 손으로 매만지고 다듬으면서 작가는 무엇을 원하고 제시하고자 하는가? 카논이 이상적인 비례를 통한 아름다운 인체의 기준이라면 그로부터 벗어나는 인체는 무엇이라 부르면 좋을까?

2023년을 기점으로 그의 작업에는 여러 가지 변화의 조짐이 엿보인다. 오랜 시간 이상화된 인체 조각에 집중했던 작가가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은 의외로 단순한 힘의 작용으로 탄생한 클레이 덩어리이다. 쥐었다 펴기를 반복하는 손의 악력으로 만들어진 클레이 덩어리들은 크고 작은 모습으로 변주되어 인간 신체의 외형처럼 보이기도 하고 혹은 그 내부의 뒤틀린 장기나 조직들로 보이기도 한다. <Hold Series>(2023)는 제목에서처럼 무언가를 붙잡은 형태 그대로를 조각으로 제시한다. 형형색색의 다양한 색깔이 뒤섞여 만들어낸 반죽들이 작가 고유의 손의 자국과 매만짐 자체를 그대로 표출하는 동시에 그 작은 형상 속에 붙들고 있다. 이는 마치 초당 수천만 개의 세포 변화와 화학반응이 일어나는 인간 신체의 어느 작용들을 똑 떼어내 반죽하듯 무한으로 증식한다.  

 

매끈한 근육의 이상화된 신체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로운 표현 방식을 채택한 작가의 신작들에는 동세로 대변되는 일련의 포즈가 여전히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정형화되지 않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1950년대 파리에서 추상회화의 한 경향으로 일어난 앵포르멜(Informel)이 기하학적인 추상의 차가움에 대응하여 추상회화의 서정적인 측면을 강조하면서 작가의 행위와 텍스처에 주목했다면, 이는 지금의 신제헌의 작업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손이 물질의 곳곳을 오가며 ‘쥐었다-폈다’를 반복하면서 새롭게 변형되는 물질 그 자체를 드러내고자 한다. 이는 그가 오랜 기간 몰두했던 인체 구조에 대한 해부학적 이해와 물성에 대한 고민이 바탕이 되어 비로소 인체 조각의 범위가 확장되었음을 시사한다. 얼기설기 덧붙여진 레진 위에 덧씌워진 인간의 형상은 다소 모호하나 오히려 응축된 에너지를 담고 있다.  

 

앵포르멜이 의미하는 부정형 혹은 비정형성과 극화된 텍스처의 시각화는 대상의 물질성에 주목한다. 텍스처나 마띠에르가 강조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추상표현주의로 대표되는 미국의 추상회화와 대응하여 앵포르멜은 유럽 미술 사조의 한 흐름이지만 비정형이라는 의미 자체에 주목해본다면 그것은 일종의 정형화된 형식으로부터의 벗어남을 의미한다.

 

작가가 어떤 대상을 염두에 두지 않은 상태에서 완성된 조각들은 더 이상 이상적인 비례와 균형 잡힌 인체를 보여주지 않는다. 그는 손으로 짓누르고 주무르며 악력을 통해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것에 주목한다. 이는 어쩌면 자신이 만들어낸 기준으로부터 벗어남의 시도이다. 

2023 경남문화예술창작센터 외부 비평가 매칭 프로그램

 

무너지는 거푸집과 비틀어지는 주물

 

박소호 (​독립기획자, 예술공간 의식주 디렉터)

 

# 디자인되는 몸

오늘날 우리의 몸은 디자인의 관점에서 여겨지고 있다. 건강과 신체 기능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을 넘어서 자신의 몸을 시각적 감상을 위한 대상으로 만든다. 여기서 신체는 아름다움이나 시각적 유희만을 쫓지 않는다. 웰빙, 정서적 안녕, 운동기능 향상이 첨가되어 각자가 원하는 여가 활동에 맞는 이상적인 모델을 그리게 된다. 그리고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모범적 사례가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다. 스포츠 선수의 훈련된 몸, 트레이닝을 위한 영상 교본, 각종 홍보와 광고에 노출되는 유명 인사의 가꾸어진 몸 등이 그것이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노박 조코비치, 오타니 쇼헤이 등 미디어를 통해 노출되는 스포츠 인사들의 몸은 선망의 대상이 되어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게 된다. 그들의 초상은 얼굴에만 국한되지 않고 각자의 장르에 맞게 훈련된 근육조직으로 확대되어 인지된다. 스포츠에서는 구기종목, 개인종목, 기록종목 등 운동의 카테고리에 맞는 교본에 따라 이상적인 형태가 만들어진다. 연출이 가미되는 영화에서는 스토리의 방향과 캐릭터의 모습에 맞게 시시각각 배우의 몸이 설계되기도 한다. 이렇게 이상적인 신체는 미디어를 통해 더욱 많은 범위로 확산되고 있다.

 

# 기념비적인 신체

미디어에서 인간의 몸은 욕망의 대상이 된다. 제품이 소비되고 기업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기 위해 활용되고 이를 위해 많은 이들을 설득할 수 있는 이상적인 몸의 형태가 지속적으로 복제된다. 이것은 다양한 모습으로 복제되는 패러디물의 일종인 밈과 매우 유사한 구조를 가지게 된다. 사실, 자본을 위해 만들어진 많은 이미지가 이 밈을 만들어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일이다. 하지만, 추세에 따라 변화되는 패션, 인테리어, 디자인과 다르게 우리의 몸은 일정한 시스템과 형태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과거의 전쟁영웅이 지닌 몸과 동시대 스포츠 아이콘이 지닌 몸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유려한 곡선과 단단한 근육의 형태는 어쩌면 누구에게나 가질 수 있는 공동의 희망과 가능성으로 인지되는 것이다. 신체가 지닌 한계와 제약이 오히려 우리의 판타지적 열망을 부추기는 동기로 작용되는 것이다. 이 과정의 결과가 바로 우상이라고 하는 추앙의 기념비이다. 작가 신제헌은 이 지점에 주목한다. 봉인된 신체의 부분과 전체를 비틀고 짓누른다. 오래전부터 수많은 조각가가 재현한 이상적인 모델은 그에게 훌륭한 소재가 되어 촉감을 발현할 수 있는 도구인 자신의 손끝을 적극적으로 개입시킨다. 표준, 이상, 욕망이 동시에 담긴 인간의 몸에 최초의 도구인 손을 활용하여 오랜 시간 형성된 거푸집을 무너뜨린다. 이를 목적으로 그의 손끝에서는 전환, 해체, 해소를 목적으로 물리적 악력이 자연스럽게 발생된다. 그리고 이내 우발적으로 만들어지는 원시적인 모양으로 나아가게 된다.

 

# 짓누르고 비틀어 내기

어떤 것을 재현했다고 하기에는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조형이다. 몇몇의 작업에서 와인드업, 슈팅과 같은 스포츠 동작을 유추할 수 있지만 상징적인 요소들은 함축되어 있다. 그러나 분명하게 인지되는 부분은 작가의 손으로 짓누르고 비틀어진 자국의 흔적이다, 형형색색의 레진으로 만들어진 반죽은 그의 손을 거쳐 뭉치고 흩어지기를 반복하면서 X, Y, Z축을 유영하고 있다. 이것은 일종의 상징과 기념비를 허물어 내는 일이다. 인간은 단단한 신체를 만들기 위해 수세대를 걸쳐 기록되고 축적된 가이드라인을 활용하여 모범적인 몸의 형태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이 몸은 수행하고자 하는 목적과 기록 달성을 위해 표준화되었다. 작가의 짓누르기는 이러한 몸의 모범적 사례를 리서치하고 수집하면서 시작된다. 주목되고 달성되기 위해 만들어진 형태에 손끝의 압력, 악력을 가하여 우상화된 몸을 비틀고 터트린다. 그리고 반짝이는 마감재를 활용해 깨질듯한 껍데기로 봉인한다. 이 과정을 나열해 보면 우상화된 몸을 수집하고 기념비적 동작을 함축하여 손의 악력을 활용해 비틀어 낸 뒤 도자기와 같은 반짝이는 마감재로 표면을 봉인하는 순으로 이어진다. 영웅을 기리기 위한 조각상, 신에 닿고자 제작된 신의 몸, 스코어를 만들어 내기 위해 훈련된 인물의 몸은 작가 신제헌이 가하는 악력에 의해 새로운 역할을 부여 받는다. 역할과 목적, 규칙과 방향이 축소된 오브제, 덩어리로 남아 가능성의 모양, 다양한 형태로도 연장되고 상상될 수 있는 엔트로피의 덩어리로 리셋되었다. 이는 우리 정서에 스며든 제약과 규제의 초기화이며, 가장 원시적이고 투명한 촉감의 발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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