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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tecture Series

2020-2021

작동하는 세계, 건축적 풍경 앞에서

                                                                                  | 안성은(성북구립미술관 학예연구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세계를 도시 풍경/조각으로 표현하면 어떤 모습일까?

 

신제헌은 “기호-구조-물성”에 관한 관심을 바탕으로 조각을 시도한다. 최근 가까운 시기에, 그는 두 번의 전시에서 신작을 소개했다.[1] 전시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건축적 형태가 주는 체감에 관한 다방면의 탐색이다. 이를 위해 작가는 자신이 경험한 사회의 풍경에 관하여 ‘건축물’이라는 직접적인 대상을 제시하며 관객의 개별적 경험을 질문한다.

 

신제헌의 작품에서 감각되는 조각적 경험은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궤를 잇는다. 먼저 시스템에 의해 직조된 상징체계로 읽히는 거대 건축물에 대한 기호적 측면이다. 현대 도시에서 고층의 건물들은 대개 개인이 짓거나 소유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기에 투입된 자본의 규모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상징물로 여겨진다. 초고층 빌딩을 짓기 위해선 운동 에너지를 층의 높이에 따른 위치 에너지로 전환하는 과정이 끊임없이 요구되므로 건축 과정에서는 물론, 유지를 위해 소요되는 모든 과정은 자본으로 귀결된다. 현 사회에서 이러한 규모의 건축물을 접하는 개인이 느끼는 감정과 그것을 기호적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방법/접근이 작품에서 느껴지는 첫 번째 인상이다. 〈Stay and Wander〉(2020) 시리즈에서 특정 뷰를 소유할 수 있는 층별 명칭과 이에 접근하기 위한 엘리베이터는 수직/상승 욕구에 대한 명확한 기호로 작동한다. 끊임없이 오르기를 반복하는 에스컬레이터의 모습을 클로즈업한 영상 작업 〈Roof_pallet〉(2021)과 고급화 전략의 일환으로 신화적 내러티브, 도상을 차용하여 제작된 조각상들이 놓임으로써 조각 속 조각의 형태를 가진〈Structure for High Rise 4〉(2021)에서도 동일한 입장을 취한다. 이러한 작품에서 입체적 이미지로 기능하는 일련의 움직임들은 일상적인 경험과 연동되어 다중의 풍경을 떠오르게 한다.

 

작가가 제시하는 풍경은 자본과 현실과의 괴리, 그것을 시각화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현대적’이고 누군가에게는 차갑게도 보일 수 있는 도시 광경은 작가의 의도에 따라 여러 함의가 담긴 풍경으로 제공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개별 건축물에 관한 구조적/형태적 접근이다. 작가는 본 작업을 구상하는 단계에서 1920년대 러시아 구축주의 작가들의 드로잉에 주목했다. 신제헌은 “이들의 드로잉은 실제 건축물로 구현되지 않았으나 유토피아적 풍경에 대한 상상은 일종의 미래 도시 풍경 같아 보였다”고 술회한 바 있다. 특히 아이코프 체르니코프(Iakov Chernikhov, 1889-1951)의 작품은 그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작가는 구축주의자들의 실천적 드로잉에 착안하여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건축물의 형태를 그려나갔다. 또한 이러한 구조물이 지금의 사회를 반영한다고 여겼다. 이에 관한 반증으로 함께 있고 싶지만, 동시에 철저히 혼자 있고 싶기도 한 공간들에 관한 단상이 이곳저곳에서 목도된다. 때문에 전시장에서의 도시 풍경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관한 인상과 형태를 숨김없이 드러낸다. 현실적 풍경임과 동시에 현재를 기반으로 그려지는 미래의 이미지가 한 작업 내에 겹쳐졌다. 복합적 이미지로 존재하는 그의 작업에는 도시에 관한 여러 겹의 감정이 쌓여있다. 현시대 속에서 상상할 수 있는 작가만의 유토피아는 폼으로 뒤덮인 작업 속 건물의 장면(〈Landscape〉(2021))과 같은 층위에 놓여 욕망이 뒤엉킨 역설이자 풍자로 기능하며 관객을 맞이했다.

 

작가는 수평/수직의 구조 속에서 독립적인 건축물로 존재하는 개별성과 건축적 요소가 조각으로 구현되는 과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철, 스테인리스를 비롯해 산업 자재로 쓰이는 다양한 재료를 사용했다. 기존 작업에서 종이를 주된 재료를 사용하던 것과 달리, 건축적 형태미와 연관지어 채택되며 물성 탐구에 관한 시도가 함께 이루어진 셈이다. 작업 과정에서 작가는 도시 경관을 계획하는 설계자이자 개별 건축물의 직접 제작자로의 입장과 시점으로 개입한다. 실제 건축물을 만드는 것 같이 도면을 제작하고, 레이저 커팅으로 제작한 도면의 구성물을 조립하는 일련의 공정을 거치며 최초의 계획과 달리 높낮이에 변화를 주거나 마감의 방식을 변경하며 형태와 물질성에 관한 변주 과정을 부여하기도 했다. 개별로 존재하는 건축적 조각물을 하나 하나의 모듈로 본다면, 작업물의 증가는 점점 미완의 도시가 제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이어 전시에서는 관객의 신체 움직임에 따라 반응하는 형태의 참여적 작업을 함께 선보인다. 이는 앞서 설명한 물성 탐구의 또 다른 시도로써 관객의 적극적 관람을 유도한다. 관객의 직접적인 터치를 통해 관람하게 하는 작업이 있는가 하면(〈Stay and Wander ver.2〉(2020)), 거리에 따라 빛을 밝히는 순간이나(〈Tower of City〉(2020)) 움직임이 결정되는(〈Stay and Wander ver.1〉(2020)) 작업도 함께 소개되었다. 표면의 무게감이 다른 조각은 시점을 달리하며 움직이길 주저하지 않는다. 여기서 움직이고 반응하는 조각은 작동하는 세계를 은유한다. 이처럼 그가 전시장으로 불러들인 건축물은 멀찍이 거리를 두거나 바싹 눈앞으로 걸음을 당기며 여러 측면의 상징 기호들을 끊임없이 소환한다. 자신의 속을 드러낸 작가는 말없이 건물 앞에 서 있다. 이어 관객은 제각기 물성과 감상법이 다른 조각 속 조각 앞에 서서 자신의 속을 들여다보는 행위를 지속하게 된다.

 

전시에서 소개하는 풍경은 신제헌이 그린 작은 유토피아이다. 현재의 건축 방식과 다른, 지어지지 않았지만 눈 앞에 높인 건축물은 현실이자 이상으로 기능하며 관객의 의중을 묻는다. 거기에 묻고 싶은 말과 듣고 싶은 소리가 풍경이 되어 놓여있다. 시간과 속도에 따라 여러 방향으로 읽고 쓰기가 달라지는 조각을 선보인 이번 전시는 작가에게 실로 오랜만인 개인전이다. 도시의 풍경을 제 손으로 지어나갈 그의 다음 여정을 조심스레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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